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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먹는 의학정보

성장판에 관한 진실

 1월부터 네이버 지식인 답변의사 활동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질문이 오는데, 생각보다 많은 답변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소아과 일반질환과 성장 클리닉 쪽의 질문을 받고 있는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키'에 관련된 것들이다.

 '겨털이 났는데 키가 더 안크면 어떡하죠?'
 '한의원에서 성장판이 닫혔다고 했는데 정말 키가 더 자라지 않을가요?'
 '키 크는데 좋은 음식이나 약이 있나요?'
 '매일 줄넘기 1000번 하는데, 2000번 하면 키가 더 클까요?'

 지금을 살아가는 10대들의 절실한 고민을 들으면서 나의 10대 시절에 대한 회한도 함께 느껴야했다.
 사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청소년기를 보냈던 나로선, 키에 대한 고민이 그렇게 절실하진 않았었는데 말이다.
 나폴레옹, 등소평, 히틀러 같은 사람들을 찾아 굳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도, 조용필, 이선희, 전영록, 서태지, 신승훈, 김건모, 물 건너 탐 크루즈 등 현실 속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키작은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고, 교실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나 키 큰 친구들 틈에 매미처럼 붙어다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 말이다.
 
 '기럭지'의 소중함은 살면서 느끼게 된 것이다.
 가장 절실하게 느낄 때는, 워싱과 핏이 딱 맘에 드는 프리미엄 진을 사면서 한 몇만원 어치는 잘라내야만 하는 그 순간이다.
 키 작은 '배정남'의 포스는 화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지만, 런웨이에선 기럭지가 긴 '주지훈'이 더 멋져보이고, 팔 다리가 긴 '조인성'은 일반인들에겐 다소 난해하고 난감한 패션코드도 거뜬히 소화해낸다.
 옷을 좀 좋아하다보니 키의 중요성을 패션 쪽으로만 설명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이런 개인적인 경우를 떠나서도 '기럭지'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나도 좀 더 일찍 저런 고민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이미 성장판이 닫힌지 십수년이 지난 내겐 너무 늦은 후회일 뿐이다.


 성장판은 장골의 양 끝에 위치하면서 성장호르몬이나 인슐린양 성장 인자-I 등의 자극으로 지속적으로 골형성이 이루어져 뼈가 길어지고 커지는 중요한 부위이다.

 뼈의 성장 과정은 나이에 따라 일정한 규칙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골단 중심의 발달 순서나모양 등에 따라 뼈 성숙의 표준치를 만들고, 이것으로 뼈 나이를 측정해서 골 성숙의 정도를 확인하고 성인 키를 예측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뼈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 중에서는 왼쪽 손과 손목의 X선 사진으로 골연령을 판정하는 Greulich-Pyle 법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손은 작은 면적에 가장 많은 화골핵이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연령에 따른 표준치를 구해 뼈 나이를 예측하는데 다른 부위보다 더 객관적이다. 
 일부에서는 골다공증 진단용 골밀도 측정기를 이용하여 발뒷굼치로 뼈 나이를 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방법이다.  
 
 성장판은 X선이 투과되고 주변의 뼈들은 X선이 투과되지 않기 때문에, X선 사진 상에서 성장판은 하얗게 보이는 뼈 사이의 검은 선의 형태로 보이게 된다.

[그림1] 만10세 여아의 왼쪽 손 X선 사진

 성장판이 닫혀 있다고 하는 것은 X선상에 검게 보이던 성장판이 완전히 골화돼 딱딱한 흰 뼈로 합쳐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되면 뼈의 길이 성장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키가 자라지 않는다.

[그림2] 만 16세 여아의 왼쪽 손 X선 사진


 '성장판이 닫혔는데, 더 클 방법이 정말 없을까요?'

 없다.
 자세나 신체 배열의 문제가 있을 경우, 체형 교정을 통해 숨은 키를 조금 찾는 경우는 있지만, 뼈가 길어지는 성장은 불가능하다.

 아직 성장 가능성이 남은 10대들이여, 키가 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방학이라고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청소년이 있다면, 빨리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드시기 바란다.
 규칙적인 식습관과 균형있는 영양 섭취, 충분한 숙면, 규칙적이고 꾸준한 운동, 올바른 자세, 스트레스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통한 정서적인 안정 등, 지금 당장은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조금만 참고 실천하면 좀 더 높은 위치에서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뭐, 그렇다고 '기럭지'가 전부는 아니다. 키는 작지만 훌륭한 사람도 많다.

 그리고, 모든 남자가 185, 모든 여자가 170이 될 수는 없다.

 그래도...
 아직 성장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조금만 더 노력해보자.
 딱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