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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라이프

108배를 하면서 느낀 어머니의 사랑


 최근에 힘든 일을 겪고 있다. 단순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시련이다.
 힘들어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다른 직원들이나 환자분을 대할 때는 일부러 크게 웃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머리만 대면 그곳이 바로 잠자리가 되어버리는 내게 불면의 밤이 찾아오고, 운동중독인 내가 벌써 몇주일째 헬스클럽 출입을 끊었다.
 그렇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니 몸상태도 영 말이 아니다. 워낙에 조금 있었던 '과민성 대장' 증상이 더 심해졌고, 초겨울부터 달고있던 감기가 떨어질 줄을 모른다.

 앉으나 서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드는 잡념들, 누워서도 눈을 감아도 떨쳐낼 수 없는 절망과 후회와 분노에 숨이 멎을 것 같은 몇일을 보내던 내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절에 가고 싶다!'
 절에 가서 삼천배 같은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물론 처음에는 목표를 삼천배로 잡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숙달된 사람도 삼천배를 하려면 예닐곱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조금 낮춰서 천배, 결국은 108배까지 깎았지만, 아무튼 절에 가서 부처님 앞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분당에 있는 절을 검색해보니 서현의 대도사, 구미동의 골안사가 검색되었는데, 규모가 큰 도심의 절같은 대도사 보다는, 산중에 위치한 작은 암자같은 분위기의 골안사가 더 끌렸다.

 여느 토요일 저녁 같으면 무조건 'going out'할 채비를 했을텐데, 어제는 퇴근 후 바로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후 절에 갈 준비를 했다. 출근할 때 입었던 정장바지를 다시 입었다가는 편안한 것이 좋겠다 싶어 트레이닝 팬츠로 갈아입었다. 운동하러 갈 때 외에는 잘 입지 않던 아베크롬비 두꺼운 져지와 오래 전에 입던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니트 져지를 레이어드 해서 입고, 목도리도 둘렀다. 
 
 집을 나서려는데 거실에 틀어놓은 TV 앞에서 걸음이 멈추어진다. KBS 주말드라마 '내사랑 금지옥엽'에서 2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엄마와 헤어졌던 막내 아들이 생모를 찾아온 장면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한테 매달리는 아들과, 끌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른 채 냉혹하게 아들을 돌려보낸 후 책상을 잡고 쓰러지며 우는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부터 쏟아진 눈물이 골안사에 도착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붕어, 말미잘, 멍충이'
 이렇게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치고,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고 나서야 엄마와 가족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고 후회스러웠다. 

 길지 않은 거리였지만, 희미한 불빛만 있는 산길은 약간 공포스러웠다. '그래도 법당에는 불이 켜져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뛰는 듯한 걸음으로 도착한 '골안사'에서는 불빛이나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머리털이 쭈뼛 서고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공포감이 밀려들어서, 법당을 향해 합장 3회 후 곧바로 차를 향해 뛰어왔다.
 
 '나의 불심은 이대로 좌절을 하고 말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골안사 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표지판에 '대광사'라고 적힌 것이 보였다.
 표지판의 안내에 따라 찾아간 곳은 '골안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주변은 고급 빌라촌이었다.
 

 계단 밑에 적당히 차를 세워두고 계단을 올라갔는데, 마당에 높다랗게 세워진 탑이 내뿜고있는 불빛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조심스런 걸음으로 찾아 올라간 법당. 천태종 절은 처음이었는데, 조계종에 비해 좀 더 화려한 느낌이었다. 아무렇게나 놓여진 붉은 방석 위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옆에 계시던 할머니 보살님이 남자는 푸른 방석을 써야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처사용과 보살용 방석 색깔을 초록과 빨강으로 구분해놓은 것이 천태종만의 예법인지는 여쭤보질 못했다.

 108배를 하는 동안 숫자를 센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힘겹게 108까지 센 후 처사용 푸른 방석에 앉고나서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운동으로 단련된 나도 이렇게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인데, 우리 삼남매 대입 때마다 백일 동안 매일 108배 하셨던 울 엄마는 어떻게 이런 걸 하셨을까?'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실 그땐 엄마가 그러시는게 짜증스럽고 속상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쏟아붓는 정성이 의미 없는 듯 보였고, 적잖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허나, 내가 이렇게 절실한 마음이 되고보니, 이제서야 엄마가 108배 하시던 그 마음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이다. 
 
 '붕어, 말미잘, 멍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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