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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라이프

포뇨의 기습 키스


 '저게 뭐야?'
 포뇨의 첫인상은 바로 의아함이었습니다. 나의 배경지식 안에서는 도저히 '브륀힐데'란 이름의 이 생명체의 정체를 규정지을 수 없었습니다.
 

 '귀엽네~'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하는 짓은 완전 귀엽습니다. 귀여움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여전히 나는 '저것이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좀 무섭다.'
 해바라기집의 심술쟁이 할머니를 통해 '인면어가 육지에 올라오면 해일이 밀려온다'는 불길한 말을 듣고부터는 소스케와 마을 사람들이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바다에 나가있는 소스케의 아버지도 염려스럽습니다.

 올 것은 오고 맙니다. 소스케의 피를 먹고 팔과 다리를 가지게 된 포뇨는 아버지가 모아놓은 생명의 물을 모두 마셔버리고는 기운찬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서 거센 바다를 이끌고 소스케가 있는 육지를 향해 달려옵니다.
 물고기 형상의 거센 파도 위를 억척스럽게 뛰어오는 '포뇨'의 모습은 약간 무섭습니다.


 쓰레기로 가득한 바다에서 머리가 유리병에 끼는 포뇨의 모습을 통해 환경 문제를 떠올렸고, 마을이 해일로 물에 잠기는 장면에서 일본 침몰에 대한 일본인들의 원초적인 공포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5살짜리의 순수한 사랑만 믿고 '포뇨'를 인간의 손에 맡기는 장면에서 뭔가 비극적 결말을 예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아주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육지로 올라온 '포뇨'는 '소스케'가 키스해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먼저 '소스케'의 입에 입을 맞춤으로써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마치 내가 깜짝 키스를 당한 것 같은 엔딩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흘러나오는 앙증맞은 주제곡을 들으면서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집니다.
 멍때리는 표정으로 노래를 듣고 있는데, 앞에 들고 있던 팝콘 상자 안에서 포뇨가 나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심각하세요?"

 글쎄, 왜 그렇게 심각했을까요?
 그냥, 좀 더 귀엽고, 좀 더 기운차고, 좀 더 행복한 미야자키 하야오식 '인어 공주' 이야기일 뿐인데...   
 이렇게 맑고 앙증맞은 만화를 보면서 왜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해야했던걸까요?

 그것이 금붕어든, 인어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냥 소스케에겐 포뇨일 뿐이고, 포뇨가 무엇이든 소스케는 포뇨를 사랑할 뿐인데, 아무리 포뇨가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포뇨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난 생명체인지가 더 궁금했던 나는 이미 순수를 잃어버린 어른이었던 것입니다.

 순수한 것, 순수로 돌아가는 것, 그 자체가 세상 모든 것들을 자연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일텐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해바라기집'의 착한 할머니들이 다섯살짜리 소스케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사랑스런 시선으로 이 만화를 만들어낸 듯 합니다.
 그래서 작품 그 자체가 귀엽고, 단순하고, 엉뚱하고, 때론 놀랍기도 한 다섯살박이 아이처럼 사랑스럽습니다.

 '포뇨 소스케 다이스키!' 라는 외침에 복잡한 의미가 없었고, '포뇨'를 지켜주기로 한 '소스케'의 약속이 조건없는 순수한 감정이었듯이, 이 만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도 역시 '그냥'입니다.

 그냥 포뇨가 너무 귀엽고, 소스케가 대견하고...

 그냥 햄 샌드위치가 먹고싶어지고...  




 그런데, 포뇨가 소스케에게 먼저 키스하는 마지막 장면은 자연이 아직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또 복잡해지려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