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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라이프

국제중 합격비결은 탁구공 잘 뽑기?

 태극마크 혹은 무궁화 마크가 붙은 국가 공인 점수 또는 자격증, 각종 수상 경력, 출결상황이 깨끗하고 훌륭한 성적이 기록된 생활기록부, 충분한 봉사활동시간, 최대한 매력적으로 쓰여진 담임선생님의 추천서.
 이상은 대입 특차전형 선발기준이 아니다. 이는 바로 국제중학교에 입학을 원하는 초등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이름부터 특별해보이는 '국제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워드, 컴퓨터 활용능력, 한자 4급 이상의 자격증 등을 따놓아야하고, TESOL, TAPS, IBT, 토익, 토플 등의 성적을 챙겨야 한다. 공부만 잘 해서도 안되고, 각종 대회에 참여하여 수상도 해야하며, 생활기록부를 빛내기 위한 봉사활동 경력까지 쌓아야 한다.
 '척화파와 주화파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은 어느쪽을 따르고 싶은가', '나무를 심는 노인이란 책에서 노인이 심은 씨앗과 그 씨앗을 선택한 이유는' 등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다양한 책들을 정독해야 하고, '현재의 국내 경제상황에서 초등학생이 할 수 있는 일'등의 질문에 대답하려면 시사와 경제에도 밝아야 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탁 막힌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통해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어려운 면접까지 합격한다고 해서 무조건 '국제중'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귤색, 흰색, 초록색의 탁구공들 중에서 귤색의 공을 뽑은 초딩들만이 내년에 국제중으로 개편되는 대원중학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총 3차의 전형 가운데 가장 초딩스러운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귤색공을 뽑으면 갈 수 있는 국제중!'
 이 얼마나 초딩스럽단 말인가?

 '흰색'과 '초록색'의 공을 뽑은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도 '귤색' 공 잡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공인한 자격점수와 화려한 수상경력, 훌륭한 생활기록부의 소유자들로 담임 선생님의 추첨을 받고, 어려운 심층 면접의 벽까지 통과한 이들인데, 공 색깔 하나에 당락이 결정되는 현실 앞에서 어떤 심정이겠으며, 함께 속상한 부모님들은 무슨 말로 자신과 아이들을 위로해야 할까?
 어려운 1, 2차 전형을 통과한 아이들에게 꼭 그런 식의 절망을 안겨주어야만 하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경찰관까지 입회한 상황에서 행한 추첨이므로,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를 어린 그들에게 미리 가르쳐주려는 의도인가?
 
 국제중의 개설은 이미 초등교육을 뒤흔들고 있다. 극소수만이 받을 수 있는 선택에 대한 도전은 광범위하게 확대될 것이고, '입시 전쟁'의 영향권은 점점 더 낮은 연령대로 그 세력을 확장될 것이다.
 이미 '국제중 진학'에 대한 수많은 출판물들이 쏟아지고 있고, 학원가에는 '국제중 대비반'이 개설되고 있다. 

 어차피 어린 초등학생들을 입시전쟁 속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면, 그래도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면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라도 해주어야 하지 않나?
 어렵사리 준비하고, 힘들게 노력해서 도전한 아이들에게, 공 색깔 하나로 운명이 엇갈리는 절망적인 경험을 굳이 안겨주어야 하느냔 말이다.
 열심히 노력했고 자격이 충분했지만, 단순히 운이 없어 떨어진 그 아이들은, 인생 초반에 얻은 그 어이없는 절망과 상처를 어떤 식으로 극복해야 한단 말인가?
 
 내년 학원가에는 이런 반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탁구공 색깔 잘 뽑기 대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