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승냥본색

피겨 룰 개정, 마오룰인가? 연아룰인가?

 최근 일본발 기사를 통해 공개된 피겨스케이팅 룰 개정안에는 특정 한 선수를 위한 일본빙상연맹의 눈물겨운 투쟁이 담겨있는 듯하다. 
 6월에 열릴 ISU총회를 통한 최종적인 논의 과정이 아직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언론은 벌써부터 자국내 특정선수에게 순풍이 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있다. 산케이 스포츠 등의 언론매체에서는 '마오룰'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마오룰'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늘 회전수 부족을 지적받아온 아사다를 위한 점프 중간점 도입, 現여자싱글선수 중에서는 유일하게 아사다만 시도하고 있는 트리플 악셀을 쇼트 프로그램에서도 필수요소로 뛸 수 있게 한 점만으로도 이 개정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점프 기초점과 가산점(GOE)의 변화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낯이 더 뜨거워진다. 마오가 시도하고 있는 트리플 악셀과 트리플 루프의 기초점은 각각 0.3점과 0.1점씩 상승하고, 마오가 뛰지 못하는 트리플 러츠와 트리플 살코는 기초점이 그대로이거나 0.3점이 감소된다. 그리고 트리플 점프의 가산점 범위를 3~-3에서 2.1~-2.1로 축소시키면서도 유독 트리플 악셀만은 제외시켰다. 오히려 트리플 악셀의 경우에는 3~-4.2에서 3~-3으로 감점폭만 줄였다.
 
 김연아 선수가 컴피티션에 계속 참가할 경우, 가장 손해를 보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가산점(GOE)의 축소일 것이다. 여기에는 질 좋은 점프와 스케이팅 기술로, 여자 선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높은 가산점을 받아온 김연아 선수의 고득점을 더이상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개정안은 '연아룰'이라고도 불릴 수 있다. 트리플 악셀을 제외한 트리플 점프의 가산점 축소는 밴쿠버 올림픽 프리 프로그램에서 무려 17.4점, 쇼트 프로그램에서도 9.72점이나 가산점을 챙긴 김연아를 의식한 개정안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김연아 선수에 대한 견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프리 프로그램에서 더블 악셀을 2회로 제한한 점도 프리에서 연결 점프를 포함해 더블악셀을 3회 시도하는 김연아를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여자 싱글에서 중요하면서도 아름다운 요소로 여겨졌던 스파이럴 시퀀스를 안무 요소로 간주하여 필수수행요소에서 제외한 것도 능수능란한 엣지 사용과 빠른 스피드로 높은 레벨의 스파이럴을 구사하는 김연아에 대한 견제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표면적인 의도는 고난이도 점프에 대한 시도를 격려하기 위한 개정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 보려는 노력 없이도 그 진짜 의도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거기에 더하여 일본 언론은 이번 개정안이 아사다 등의 일본 선수들에게 유리하다고 노골적으로 떠들어대고 있다.
 법도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스포츠의 룰도 사람이 만드는 것인 만큼,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손에 의해 룰이 개정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한 국가의 과도한 집착으로 인한 비상식적인 행위들이 가장 아름다워야 할 피겨라는 스포츠를 더럽히고 있는 꼴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아름다운 피겨를 둘러싼 아름답지 못한 암투는 과거부터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피겨는 정치적인 스포츠라는 것은 우리가 피겨의 변방에서 객관적인 입장으로 지켜봤던 시절부터 익히 들어왔던 말이다. 밴쿠버 올림픽 전 4년여의 기간 동안 한 소녀 피겨 선수의 어깨에 한 나라의 위상과 국격을 올려놓고 있었던 우리 대한민국만 되돌아봐도 피겨가 갖는 정치성은 쉽게 와닿는다. 그러니 우리도 지금은 '피겨는 정치적인 스포츠이다'라는 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김연아 선수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것만 있었을 뿐 일본처럼 특정 한 선수를 위해 빙상연맹이 룰 개정에 발 벗고 나서지도 못했고, 언론들 역시도 한 선수를 일방적으로 끝까지 비호하며 때론 날조까지 서슴치 않는 등의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도움은 커녕, 순수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김연아 선수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듯한 악의적 보도를 일삼는 국내기자도 있었다. 

 그렇게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피겨라는 스포츠에서 이렇다 할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는 국가에서 김연아와 같은 걸출한 챔피언이 나왔다는 사실은 가히 기적이라 불릴만하며, 지금껏 피겨계에서 방구깨나 뀐다던 나라들이 부러워하고 시기할만하다. 자기들이 차려놓았다고 생각하는 밥상에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한 선수가 혼자서 배불리 먹고있는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숟가락을 뺐으려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정안은 '마오룰'이 아니라 '연아룰'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김연아'를 잡기위한 룰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사다에게 순풍이 될 개정안이라는 일본 언론의 설레발대로라면 '마오룰'이라 불러야 하겠지만, 그 또한 그들의 마오짱이 기무요나를 이기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연아룰'이라 부르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이것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뽑힌 김연아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는 부분이다. 이번 피겨 룰 개정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아사다 마오도 아니고, 일본 빙상연맹도 아닌, 김연아이다. 김연아 하나때문에 피겨판에 일대 혁명이 일어날 태세이다. 과연, 입이 쩍 벌어지는 영향력이 아닌가 말이다. 


                                                                                                        [사진출처 : AFP]


 허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그들이 이번 룰 개정안을 통해 견제하려 하는 것은 '과거의 김연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룰 개정안을 그대로 갖고 시간을 3개월 전으로 돌이킬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이미 치뤄진 밴쿠버 올림픽 경기에 그것을 적용시킬 수 있다면,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점수차를 조금 좁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봤자 메달 색깔은 바뀌지 않는다. 

 김연아는 더이상 과거를 보고 있지 않다. 그녀는 과거가 아닌 미래에 관한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사숙고해서 옳은 길을 찾겠다고 한다.
 아직 그 어떤 언급도, 암시도 없었다.
 지금은 그 누구도 그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김연아의 과거를 돌아보면 김연아의 미래는 더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과거에도 김연아 선수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룰 개정을 몇 차례 경험했고,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편파판정도 당해왔다.
 그런 견제와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김연아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다른 레벨의 스케이터로 진화해왔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이룬 눈부신 성공은 그런 장해 요소들이 그녀를 강하게 단련시킨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연아는 역경을 통해 더 강해지는 선수이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나는 점은, 일본언론에서 흘린 개정안의 내용들이 모두 김연아가 은퇴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고있는 듯 보인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개정안이 김연아의 은퇴를 종용하는 듯도 보이지만, 김연아가 없으면 맥빠지고 싱거워지는 대목들이 너무나 많이 눈에 띈다. 
 김연아가 없다면, 룰 개정에 열을 올리는 일본빙상연맹과 일본언론들의 노력도 큰 의미를 잃어버린다.
 점프 중간점 도입만 해도 그렇다. 개정안대로 회전수가 부족한 점프에도 중간점을 인정해준다면 앞으로는 많은 선수들이 트리플 악셀이나 쿼드러플점프를 시도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 개정안은 아사다에게 순풍이 되어주기보다는, 그녀가 그나마 2인자의 자리라도 지켜낼 수 있었던 유일한 무기인 트리플 악셀도, 위험을 무릎쓰고 고난이도 점프를 시도한다고 떠벌렸던 그녀의 도전정신도 그 빛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김연아가 은퇴를 하고 이번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아사다 마오가 꼭 뛰어넘겠다고 공언했던 김연아의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않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들은 자꾸만 김연아를 흔들어대고 있다. 
 운동선수로서 이룰 건 다 이루었다고 말하며 새로운 목표를 찾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김연아를, 그들은 가만히 보고있기 싫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이 견제하려는 '과거의 김연아'는 이제 없다.
 과거의 김연아는 이미 이루고자 했던 꿈과 목표를 다 이루고 전설 속으로 걸어들어갔기 때문이다.
 앞으로 김연아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든,
 그때의 김연아는 이미 '과거의 김연아'가 아니다.

 지금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미래의 김연아'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