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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냥본색

김연아의 행복한 올림픽

 
 2010 뱅쿠버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피겨 스케이팅의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이 국내 시간으로 모두 평일 오전이라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몇달을 보냈다.

 그런 내게 기적같은 행운이 찾아왔다. 공교롭게도 연아의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시기에 맞추어 갑자기 직장을 옮기게 된 것이다.
 지난 토요일까지 전근무지에서의 업무를 끝낸 후 3월부터 새 직장으로의 출근을 약속해둔 상태에서 맞이한 1주일간의 휴식.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휴가가 내게 주어진 것이다.

 2월 초, 2박 3일간의 겨울 휴가를 다녀온 직후, 원장님으로부터 새로운 직장을 구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에는 사실 무척 당황스러웠다. 최근 부쩍 힘든 모습을 보여왔던 원장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병원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물론, 그 병원에서 오래오래 근무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진 않았지만, 1년도 안되어서 직장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통보를 듣자마자 구직 게시판에 프로필을 올렸고, 생각보다 빨리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다행히 별다른 어려운 없이 새 직장이 결정 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고민이 있었고, 많은 것들이 새롭게 결정되었지만, 그런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도 가슴 밑바닥에서 나를 기쁘게 해주었던 생각은 바로 연아의 올림픽 경기를 편안한 상태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은 조카와 나란히 앉아서 1그룹 첫번째 소니아 라퓨엔 선수부터 서른번째 안도 미키의 순서까지 대구집 거실에서 5.1ch AV 시스템과 함께 HD 화질로 지켜볼 수 있었다.
 다음주부터 초딩이 되는 조카 연이는 줄곧 김연아 선수는 언제 나오느냐고 몇번이나 몸을 비틀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꿋꿋한 자세로 앉아서 선수들의 미모와 의상을 평가하기도 하고, 넘어지거나 회전수가 부족한 점프에는 안타까운 탄성을 보내는 등 제법 새끼 승냥이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평소같지 않게 비교적 분발한 마오의 연기가 끝난 후 여왕님의 표정이 클로즈업 되었을 때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에 가슴이 떨렸지만,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연아를 다독이는 오서샘의 얼굴을 보며 이 삼촌 승냥이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기대 이상의 점수에 좋아하는 마오 선수와 일본인 관중들의 호들갑스런 환호성으로 술렁이는 경기장 분위기에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었고, 그에 따른 부담감으로 인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마음을 다잡고 멋진 연기를 펼친 연아가 더 커보이고 더 대견스러웠다. 


 그리 후한 점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연아도 지켜보는 사람 모두도 만족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준 연아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뿐이다.

 깨끗한 기분으로 오늘밤과 내일 하루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휴식을 취한 후, 남은 프리 프로그램에서 후회없는 경기 펼칠 수 있기를...

 평소대로만.
 
 마치 갈라쇼를 하듯 편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시길...

 12년을 기다린 연아의 소중한 올림픽을
 뜻하지 않게 맞이한 1주일의 휴가와 함께 할 수 있어 더없이 행복한 삼촌 승냥이입니다.
 
 연아에게도 끝까지 행복하고 즐거운 올림픽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