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 선생님과의 마지막 눈맞춤을 뒤로 하고 스윽스윽 얼음판을 지치고 나서는 연아.
큰 원을 그리며 시작 지점을 향해 가는 그녀를 향한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쏟아지고,
그녀는 의연한 표정으로 시작 지점에 멈추어선다.
갈채도 잦아들고...
시작 자세를 잡고 음악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새 하얀 링크 위에 홀로 서있는 스케이터는 그렇게 외로워 보일 수가 없다.
본인 스스로 그 누구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고있을 자신의 컨디션도,
시합 직전 유독 그녀를 신경쓰이게 했던 특정 구성요소에 대한 걱정도,
자신에게로 향해 있는 과도한 관심과 기대에 대한 부담감마저도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그런 많은 것들을 가진 채로
연아는 혼자 빙판 위를 가르고, 혼자 돌고, 혼자 날아올라야 한다.
그녀가 몸을 맡기고 기댈 곳은 그녀가 수없이 듣고 또 들었을 음악뿐이다.
피겨는 참 외로운 스포츠인 것 같다.
어제 새벽,
거의 가수면상태로 1, 2그룹 선수들의 경기를 참아낸 후,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맞이했던 연아의 경기를 보면서,
우리보다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오서 선생님만큼이나
안타까운 표정이 지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연아도 조금은 부담을 덜 수 있겠구나.'
경기마다 신기록을 가지고 시합을 해나가는 것은 연아에게 너무 큰 부담일 것이다.
만약,
이번 대회 프리 프로그램마저도 너무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더라면,
다음에 이어질 그랑프리 파이널엔 더 큰 부담을 안고가야 했을 것이다.
연아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불안해질 정도였으니까.
200점을 훌쩍 넘어버린 그 위에서 연아는 얼마나 더 외로웠을까?
아직 동료들은 모두 한참 저 아래에 있는데 말이다.
더 힘찬 도약을 위한 아주 작은 움추림으로 삼기에 이번 대회가 적절한 시점인 것 같다는 것이
이 삼촌승냥이의 비루한 생각이다.
이번 대회에 남는 아주 미약한 아쉬움이 있다면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프로그램의 시간대가 너무 달랐던 점이다.
따져보면 24시간 내에 쇼트, 프리, 갈라가 모두 이뤄진 셈이었으니
선수들이 피로를 느낄만도 했다.
올림픽에서는 좀 더 선수들의 컨디션 리듬을 고려한 스케줄 편성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 엄연히 우승했고,
아주 우월한 성적으로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도 했는데
이 결과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뒷말을 붙이는 것 조차도 좀 웃기는 일이긴 하다.
남싱 우승한 에반 라이사첵도 3번의 점프실수가 있었으며,
자신으로선 최고의 기량을 보인 후 계라도 탄 표정으로 웃고있던 레이첼 플랫도
클린에 가깝게 수행한 자신의 프로그램에 대해 만족하며 기뻐한 것이지
김연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기대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경기 후 오서 선생님의 표정에선 마치 혈육같은 살가운 정이 느껴졌다.
아쉬운 표정으로 아이스링크 밖을 나오는 연아를 말없이 따스하게 안아주는
든든한 대장승냥이가 연아 곁에 있어서 더없이 흐뭇하다.
이번 대회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과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는 것은 연아와
연아 곁을 든든하게 지키고있는 드림팀 선생님들이 누구보다 더 잘 알아서 할 일이다.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점수를 확인하며 부끄러워 하긴 했지만,
여전히 의연하게 활짝 웃는 대인배 연아의 모습을 보며
삼촌승냥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뒤늦게 찾아본 시상식 장면에서의 그 옹골진 표정과
우월한 갈라 프로그램에서 다시 반짝이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 제가 잘 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의 김슨생은 자신과 자신이 앞으로 가야할 길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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