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구숫당근

뮤지션 이선희의 열네번째 사랑 - 이선희 14집 사랑아..


  '나는 변했을까? 아니 변하고 싶었다. 내안에 있는 실을 다 뽑아내 더는 보일 것이 없어 채워넣고 싶었다. 그러했던 바램만큼, 아니 그 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시 생겨난 마음을 거침없이 쏟아내길 희망한다.'

 2009년 2월 25일 세상에 나온 이선희의 14집 앨범 [사랑아..]의 'thanks to'를 통해 그녀는 이런 바램과 희망을 밝혔다.

 앨범 표지부터 속지 곳곳에 본인의 사진을 넣은 것은 앨범 어느 곳에서도 사진 한 장 볼 수 없었던 13집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것 역시 변화라면 변화일까?

 팬의 입장에선 긴 부재였던 기간을 이선희는 긴 여행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그 긴 여행을 통해 다시 생겨난 그녀의 마음을 차근차근 들어볼 차례다.

 이선희
의 맑고 청아한 음색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첫 트랙 '그대 향기'는 마치 햇살 가득 눈부신 봄날에, 푸르름이 가득한 초원에서, 살살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맞고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제목처럼 참 향기로운 트랙이다.
 
목가적인 분위기에 동양적인 정취가 가미된 어쿠스틱 사운드를 타고 설렘이 가득 담긴듯한 선율이 흐르는 부분에서는 마음 속에 그리움이 고여가다가, 경쾌하면서도 강렬한 드럼 비트가 섞일 때쯤에는 그리움으로 가득 차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힘껏 달려가고만 싶어진다.
 그리고, 바깥보다 안으로 퍼지는 깊은 울림은 사랑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되어 온몸 가
득 퍼져간다
 꽃이 만발한 봄의 절정이나 초록이 짙어가는 초여름 쯤 타이틀곡 '사랑아..'에 이어지는 후속곡으로 이 노래 '그대 향기'를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맑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도 짙은 그리움이 묻어나는 포크 락 계열의
'그대 향기'의 잔향이 그대로 남은 상태에서 맞는 두 번째 트랙은 R&B 풍의 '참 나쁘다'이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편안함 속에서도 깊은 진심을 건드리는 섬세한 결을 살려낸 깔끔담백한 이선희표 R&B이다. 

 타이틀 트랙 '사랑아..(string ver.)'에서 그녀는 가수 이선희의 고음과 파워에 대한 당연한 기대를 끝까지 져버리고, 마치 혼잣말을 하듯 자신만의 노래를 나즈막하게 읊조린다.
 
그렇게 나지막히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지만, 멜로디와 가사는 선명하게 잘 다가와서, 마치 아주 가까이에서 낭랑한 목소리의 시낭송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며, 마음을 살살 달래주는듯한 정겨운 왈츠 리듬이 비감어린 선율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높이를 아껴 깊이를 얻었고, 익숙하고 편안한 듯하면서도 강렬한 왈츠 리듬이 뒷심을 받치고 있는 수작이다.
 
선율과 리듬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있다보면, 어느새 '고음'에 대한 집착 따윈 깨끗이 날아가버린다.
 
어쩌면, 그런 집착마저도 이 노래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욕심에서 편해져 마침내 사랑도 이별도 인생의 벗으로 받아들이게 된 넉넉한 마음으로 이 노래를 듣는다면?

 '사랑아..'로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었다면 이어지는 라틴풍의 리듬에 몸을 맡겨보자.
 
네 번째 트랙 '사랑! 그 자체가 좋다'는 상처와 아픔이 지나가고 난 후, 다시 찾아온 사랑
의 떨림에 기꺼이 몸을 맡기고, 사랑 그 자체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한 사랑지상주의자의 사랑 예찬을 흥겨운 라틴 리듬과 재즈 풍의 보컬로 풀어내고 있다.

 
이선희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목마른 '이선희 매니아'들을 위한 선물 같은 트랙 '해바라기'는 어느 정도 그 갈증을 해소해주는 노래이다.
 
시원스럽게 내지르는 샤우팅 대신, 바깥보다 안으로 터지는 폭발력을 보여주는 탁월한 발라드로, 애절한 호소력과 탁월한 가창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트랙이다.


 다음은 다시 R&B. 미디엄 템포의 '시작할 수 있을까... 사랑을' '참 나쁘다'에 이은 또하나의 이선희표 R&B.
 완숙미가 돋보이는 이 트랙 역시 '이선희 매니아'들을 위한 선물 같다.

 다시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을 무렵, 농염한 분위기의 블루스 락 너의 길이 위풍당당히 흘러나온다.
 
25년차 보컬리스트의 내공이 스스로 직조해낸 유연한 선율과 리듬 위에서 춤 추듯 교태를 부린다.
 이곡은 딸 '양원이'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담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친구처럼 쿨하면서도 다정한 엄마가 사려깊은 딸에게 무심하게 툭 던지는듯한 진심과 마음이 흐뭇하게 다가온다. 
 엄마 이선희는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고, 자칫 감정이 과하게 실려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지나치게 심각해질 수도 있는 인생 이야기를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끈적하면서도 유쾌한 리듬 위에서 노닐던 목소리는 다시 좀 더 가뿐한 느낌의 R&B 리듬을 탄다.
 ‘
그대가 그리운 날에서 이선희는 소몰이와 꺾기 없이도 충분히 깊은 느낌이 실리는 이선희식 R&B를 다시 한번 선보인다.

 인도풍 같기도 하고, 아랍풍 같기도 한 사운드에 둘러싸인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트랙 비워져 가는 세계사랑이라는 일관성으로 흐르는 이 앨범에 다채로움을 더해준다.

 
타이거JK가 작사와 피쳐링으로 참여한 YOU TOO는 두 거장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작업이었다.

 마지막 트랙에는 string version이 주는 풍부함 대신 보컬에 집중된 최소한의 편곡만으로 이루어진 '사랑아..'의 원곡 버젼이 담겨있다.
 
 전체적으로 '사랑'이라는 주제로 일관성있는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소리와 다채로운 색깔이 담긴 앨범 [사랑아..].
 10집으로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가능성을 이미 검증 받았던 이선희는 지난 13집 작업을 통해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마음의 실을 다 뽑아내어 정교하게 짜낸 충실한 결과물로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면, 이번 14집에서는 자신만의 색깔 속에서도 다채로운 색감을 끌어내어 풍부하면서도 섬세한 결을 살려내는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마흔 다섯 먹은 가수의 25년 묵은 팬으로서는 사실 앨범을 내주고, 계속 무대에 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일이다. 
 세월이 빗겨간 듯 변치않는 젊음은 덤이다. 그런 한결같은 모습을 지금까지 지켜주고 있는 것에 대해선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를 판이다.
 그런 이선희가 이번에도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선물을 들고 돌아왔다.

 

 2년 전,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며 떠났던 이선희가 마침내 돌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