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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간섭하기

동방신기 앨범이 19세 미만 판매금지?


1987년 조지 마이클이 솔로 데뷔 후 두번째로 발표한 싱글 'I Want Your Sex'는 미국 내에서도 큰 논란거리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MTV는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 방영을 야간에만 허락했으며, 당시 'American Top 40'의 진행자 Casey Kasem은 아티스트 이름만 말하고, 노래 제목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해 국내에 발매된 'Faith' 앨범에는 'I Want Your Sex'라는 노래는 삭제되고, 대신 Wham 시절의 노래 'A Different Corner'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학생이었던 우리는 이미 AFKN에서 토요일 오후에 방송되는 'American Top 40'를 통해 이 노래의 뮤직 비디오까지 본 상태였고, 'I Want Your Sex'가 들어가있는 해적판 앨범을 구한 녀석은 친구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었습니다.
고1이었던 1991년, 컬러 미 배드의 'I Wanna Sex You Up'이 아시아 지역 발매용 앨범에서는 'I Wanna Love You UP'으로 바뀌어있는 걸 보며 가소로운 웃음을 짓기도 했었죠.

이미 20여년 전의 이야기지만,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존재하는 현실입니다.
청소년보호위원회(이하 청보위)는 지난달 27일 고시를 통해, 동방신기의 '주문-미로틱', 솔비의 'Do it Do it', 다이나믹 듀오의 'Trust Me'와 'Make Up Sex' 등 국내외 음반 110곡(국내 32, 국외 78곡)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분류했습니다. '주문-미로틱'의 경우 전체적인 분위기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를 밝혔으며, 다른 노래들에 대해서도 선정적 표현, 욕설과 비속어 사용 등으로 청소년의 정서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가 제시되었습니다.
이에 앞서 청보위는 지난달 17일 비의 '레이니즘'에 대해서 이미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린 바 있고, 이에 따라 비는 음반에 '19세 미만 판매 금지'라는 스티커를 붙였고, 지적된 '매직스틱'이라는 가사를 수정한 '클린버젼'으로 음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같은 조치에 가장 '뿔난' 사람들은 바로 그들의 10대 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10대가 상당부분을 이루고 있는 동방신기의 팬들은 다음 아고라를 통해 유해매체물 등록 반대운동을 시작했으며, 이 청원운동은 4일만에 14000명이 동참할만큼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동방신기'를 '신'처럼 받들고 있는 10대들에게 '너희들에게 동방신기의 노래가 유해하다!'고 판정을 내린다고 해서, 그들에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소중한 오빠들 앨범에다 '19세 미만 판매금지'라는 딱지를 붙여놓는다고 해서, 과연 그들로부터 '동방신기'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요?

음반 사전 심의 제도가 폐지된지 12년이 흘렀습니다. 자유를 보장받은 만큼 창작인들도 그 만큼의 자유에 해당하는 책임을 져야함은 마땅합니다. 특히, 주된 추종세력이 10대들인 아이돌 스타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10대들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한 자정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10대들에게 있어서는 아이돌들이 부모님과 선생님보다 오히려 더 깊고 센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란걸 깨닫고, 청소년들에게 좀 더 건강하고 희망적인 메세지를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은 저 역시 주장하고싶은 바입니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사람들이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뒤늦게 내놓은 이번 조치에 대해선 그저 바람 빠진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청소년에 유해하다고 판정당한 가수들도, 또 사랑하는 그들로부터 보호당해야하는 청소년들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방법들입니다.
이미 가요순위에서 1위까지 하고, 이제 후속곡을 밀려고 하는 상황인데, '청보위'라는 어른들이 뒤늦게 나타나 '너희들이 좋아라했던 그 노래가 너희들에겐 해로운 노래였다'라고 말하면, 그말이 그들에게 씨알이나 먹히겠느냔 말입니다.

그저 무심코 즐겼던 가사들까지도, 아주 상세하게 그 깊은 의미를 헤짚어 설명해주어서, 미처 의미를 몰랐던 아이들까지도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겠군요.
제 생각엔, 그 노래들보다, 그 노래의 의미에 대해, 아주 과도할 정도로 깊고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청보위의 고시'와 그에 따른 기사들이 청소년들에겐 더 유해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시대는 변했는데, 어른이 되고나면 그냥 똑같아지나 봅니다. 몰래 '빨간 책'을 돌려보고, 엄마 몰래 '빨간 비디오' 보던 중고딩들도, 어른이 되고나면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싶어하는 것들에 그렇게 임의의 기준을 적용해 '빨간딱지'를 붙이게 되나 봅니다. 
요즘과 같은 정보의 홍수 시대에, 말빨도 안서는 '유해판정'이란거 내려놓고, 빨간 딱지 하나 붙여놓는다고, 입에 붙었던 '매직스틱~'이 갑자기 '마이 소울'로 바뀌고, 'under my skin~'이란 가사가 기억에서 지워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