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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ca X2

라이카 전자식 파인더 EVF2

 22일 새벽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센세이션 코리아'가 열리고 있는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는 DJ 'Sebastian Leger'의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라이카 X2의 'Ever-Ready Case'의 단추를 열어 카메라를 들어올리려는 순간, 카메라 낙하 사고 발생!  

 

 'Ever-Ready Case'에는 카메라 몸체 양쪽에 있는 고리를 끼울 수 있는 구멍 외에는 별다른 고정장치가 없어서, 케이스를 거꾸로 들었을 때 카메라가 빠질 위험이 있다. 나처럼 조심성이 부족한 주인에게는, 특히 그날 새벽처럼 정신적 흥분 상태에서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사고였던 것 같다.

 

 다행히 카메라는 잘 켜졌고, 사진도 잘 찍혔다. 렌즈에도 깨진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촛점도 잘 맞았다.

 

 조명이 밝은 화장실에 들어가 카메라를 샅샅이 살펴보니, 외관 상 다른 이상은 없었으나, '핫슈 커버'가 부러져 있었다. 카메라 성능에는 지장이 없는 경미한 파손이었고, 다른 심각한 손상이 없음에 감사할만한 일이었지만, 그 시간 이후로 내 의식은 '부러진 핫슈 커버'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마지막 DJ 'Funkagenda'의 퍼포먼스 중에도 나는 아이폰으로 '라이카 스토어'에 들어가 '핫슈 커버'를 따로 판매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인터넷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제품 목록에 '핫슈 커버'가 없자, 나는 집에 가는 길에 당장 라이카 충무로 매장에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더욱 별일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사소한 문제에 금세 마음을 빼앗겨 버렸고, 공연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급격하게 피로가 밀려왔고, 나는 결국 고대하던 피날레도 보지 못하고 종료 30분 전에 공연장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미 신청해놓은 '네이버카페 클럽 라이카의 초보강좌'에도 못간다는 쪽지를 보내버렸다. 그렇게 쉽게 마음이 헝클어지면서 몸도 무너져버렸는지, 갑지기 심한 피로를 느껴서 도저히 그 상태로는 오전 10시에 시작되는 카메라 강좌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센세이션 코리아'가 끝난 후 조금 자고나서 카메라 강좌가 있는 '홍대 앞'으로 가려고 잡아둔 숙소 '레지던스 앤 유(레지던스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레지던스 건물이 아니라 로데오 스위트라는 오피스텔의 일부를 렌트해주는 업체였다. 레지던스에서 머문다기 보다는 일산에서 자취하는 친구집에 가서 자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에서 2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일어나면 망원동에다 친구를 내려준 후에 충무로 라이카 매장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9시에 알람을 맞추고 잤지만, 30분 정도 더 느적거리다 일어났다. 그때 느낀 몸 상태로는 카메라 강좌를 포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면서 문득 일요일에 매장이 문을 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확인했더니 역시나 영업시간 안내에서 일요일은 빠져있었다. 고객센터 전화도 일요일에는 받지 않는다고 되어있었다. 매장 방문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친구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부러진 핫슈 커버'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다음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핫슈 커버'를 따로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 전까지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핫슈 커버를 따로 구할 수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밀려왔다.

 그렇게 사소한 고민과 걱정에 매달려 있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내 의식에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뷰파인더'에 대한 생각이었다. 

 

 원래부터 갖고싶었던 것이니까 이런 기회에 사는 것이라고 애써 자조섞인 혼잣말을 되뇌이며, 나는 결국 일요일 오후에 인터넷 '라이카 스토어'에서 '전자식 뷰파인더'를 질렀다.

 

 이번 기회에 카메라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느낀 '손목 스트랩'과 'Ever-Ready Case'와 결별한 후에 필요할 '카메라 가방'도 함께 구매했다.

 

 

 카메라가 들어있는 백팩을 조수석에 올려놓고 가다가, 차가 급정거했을 때 백팩이 앞으로 쿵 떨어지면서 내 가슴도 철렁했던 적이 몇번 있었다. 정밀기기를 소지하고 다니기 위해서는 보호장치가 된 카메라 전용가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나는 장인도 아니고 예술가도 아니지만, 'Artisan & Artist'에서 나온 가방을 구입하지말란 법은 없겠지? 'X용 시스템 케이스'는 품절이기도 했고, 'A&A'의 이 가방이 내가 원하는 모양과 크기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칠리 레드'의 '미니쿠퍼 로드스터'의 오너가 된 후론, '빨강'이면 무조건 50점 정도는 먹고 들어간다.

 

 

  '카메라'와 'Ever-Ready Case' 이후로 3. 4번째로 맞는 라이카 상자이다. 라이카에 대한 충성도를 고취시키는 저 상자를 앞으로 몇개나 더 받게 될까? 

 

 

 'My Point of View'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전자식 파인더 EVF2'는 저 앙증맞은 케이스와 함께 왔다. 저렇게 가볍고 조그마한 것이 웬만한 데스크탑 컴퓨터 가격이라니...

 

 

 'Ever-Ready Case'를 대신해 라이카 X2와 그 악세사리들을 수납하고 보호할 'A&A ICAM-210H'의 내부이다. 

 

 

 내부에 탈부착식 칸막이가 하나 있다. 뷰파인더 장착한 상태에서 넣어도 공간 높이는 넉넉하다.

 

 가죽 손목 스트랩은 생각보다 좀 큰 것 같다. 언제라도 생길지 모를 낙하사고에 대비하여 항상 손목에 걸고 찍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EVF2'와 '손목 스트랩' 장착한 라이카 X2 셀프샷이다.

 

 'EVF2'와 만나서 비로소 완전체가 된 듯한 '라이카 X2'를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아주 사소한 문제와 갈등에도 쉽게 무너져버리는 내 심리적 취약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 같아 조금 씁쓸한 마음도 남아있다. 조금만 물러나서 바라보면 아주 사소한 문제인데, 그 순간만큼은 고민과 집착에 빠져 쉽게 무너져버리고마는 나의 이 연약한 유리 멘탈 말이다. 

 '핫슈 커버'가 부러진 걸 알았던 그 순간에도 다른 심각한 손상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그냥 툴툴 털어버리고, 그냥 '센세이션 코리아'의 남은 공연을 충분히 더 즐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사소한 문제에 마음을 빼앗겨서 더이상 공연에 몰입하지 못했고, 고대하던 피날레도 보지 못한 채 공연장을 떠났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번 틀어져버린 몸과 마음으로 결국 '카메라 강좌'에도 가지 못했고, 줄곧 집착적인 생각에 매달려 있다가 다소 과한 지출을 하고나서야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땐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다음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핫슈 커버'만 따로 구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본 후에, EVF2 구입을 고려하는 방법이 훨씬 더 현명했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어떤 문제와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최선책이 아닌 응급책을 썼다가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경험이 많은 것 같다. 그 당시엔 정말 급하고 심각했던 문제도, 조금 물러나서 혹은 조금 지나서 생각해보면, 정말 별 것 아닌 경우가 많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때를 기다려서 순리대로 풀어야 할 것을, 마음만 앞서가서 그르친 경우가 허다하다.

 세상에는 내 마음의 속도에 맞춰서 움직여주는 것은 별로 없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타인으로부터 객체화된 세상에 포함되어 있을 때에는, 그에겐 마음처럼 되지않고, 잘 따라주지 않는 존재 중 하나일 것이다.

 

 누구나 당장 해결해야할 문제가 없고, 신경 쓸 문제와 갈등이 없는, 아주 평온한 상태를 원할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조속히 해결이 되어서, 빨리 문제 없는 상태가 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센세이션 코리아 후기 1편( http://peterlog.com/128 )의 마지막에 '중요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썼었는데, 결국 원하던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내 일이 아니라 내 가족, 우리 큰누나의 일인데, 정신적인 영향은 오히려 더 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차라리 내 일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지금껏 우리 가족들에게 (지금의 내가 겪고있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내 가족의 일'을 좀 잊을만 하면 하나씩 만들어주던 가족 구성원이었던 것 같다. 아주 어렸을 때 천식으로 인한 잦은 병치레, 재수 때 수능 1주일을 앞두고 발병 사실을 알았던 '기흉', 본과 1학년 때에 그대로 학업을 지속하기는 힘들다고 뛰쳐나와 휴학했던 일도 가족들에겐 큰 걱정꺼리였을 것이다. 소아과 레지던트 1년차 시절 의사 포기하겠다고 도망쳤을 때에도, 4년 전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었을 때에도, 6개월 전 별거에 들어가면서 누나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도 가족들은 나로 인한 스트레스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어제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병원 회식이었는데도 말도 없이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불필요한 걱정은 말고 살아가면서 생길 수 있는 무수한 문제들 중 하나로만 생각하고 받아드리자. 치료는 명확한 가이드 라인도 있으니 그냥 시간에 맡기고 잘 버티고 잘 따라가면 되는 것이니까. 회사일도 크게 무리안하는 선에서 평소대로 잘 해나가길~ 가장 힘들게 하는건 병이 아니라 결국 쓸데없는 걱정들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드리고 잘 이겨내보자. 가족들이 열심히 도울테니~ 힘내~!^^'

 

 큰누나에겐 진심을 다해 응원과 위로의 메세지를 보냈지만, 집에 가는 내내 몸과 마음은 무거웠다.

 

 그렇지만, 내가 그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들어할 때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잘 버텨주고 끝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었던 가족들처럼, 이제는 내가 큰누나에게 힘을 주고 의지가 될 수 있는 가족이 되어주기 위해 중심을 잡고 잘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누나에게는 내가 남편, 자식의 몫까지, 그리고 이젠 나이가 드셔서 몸과 마음이 약해지신 부모님 몫까지 (어느 정도까지는) 대신해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더 나빠지기 전에 발견하고 손을 쓸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며, 앞으로 시작될 과정을 누나가 잘 버틸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왜 하필?'이라는 의문이 끝없이 밀려오고, '빨리'라는 부사에 마음이 급해지지만,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고 마음만 앞서가고 시간을 견디지 못하면 그만큼 더 고통스럽고 힘들어지기만 할 뿐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 해나가면서, 인내심과 용기를 갖고 순간순간을 버텨가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행복은 해결의 '끝'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과정'에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것이며, 우리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만 바라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고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 상태'란 없다고 생각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 될 것이고, 견디기 힘든 순간도 찾아오겠지만, 그때마다 우선 나부터 꿋꿋하게 중심 잘 잡고 똑바로 서서 누나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