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선보인 '나는 가수다'의 듀엣 미션은 긴장감에 쩔어서 한주한주 버티고 있는 출연자들에겐 잠시 쉬어가는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 어떤 경연보다 더 강하고 치열한 무대가 되어버렸다.
어제 저녁에 바로 구입한 음원을 아침 출근길 차안에서 듣다가 가슴이 찌릿찌릿해지는 걸 느끼며, 이 게으른 블로거에게 모처럼 포스팅에 대한 영감까지 차올랐다.
첫번째, 인순이와 김도향의 무대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자막에 의해 '대가'라 칭해진 두 분은 '가요 무대'와 '7080 콘서트' 사이의 어디께를 헤매고 다니셨다. 인순이 본인의 입을 통해 나온 '연륜'이나 '깊이'라는 단어는 정작 무대에선 느끼기 힘들었다.
순위가 내려갈수록 '선배님께 죄송할 것 같다'던 인순이의 말은 평소 그분이 보여준 '나는 선배가수다 정신'에 입각한 선배님에 대한 배려와 예의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한편으론 선배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이 무대는 이번 경연에서 유일하게 음원을 구입하지 않은 트랙이 되었다.
두번째, 자우림과 백현진의 무대는 앙칼지고 격정적인 에로스를 보여줬다. 자문위원 김태훈이 말한 '항구여사장과 마도로스'보다는 개화기 경성 어디쯤의 풍경이 떠올랐다.
자우림이 후끈 달아오르게 한 무대를 윤민수와 이영현이 이어갔다. '감정을 절제하라'는 조용필 선배 말 안듣고 자기감정대로 불렀다가 좋은 평가를 받지못한 전 무대를 의식했는지, 윤민수는 오히려 '감정과잉의 극치를 보여주겠다'는 호기어린 선전포고를 했다. (윤민수의 '창밖의 여자'는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선 쫌 멋졌다. ^^)
'부부 싸움 하는 것처럼 너무 고성만 오갔다'는 식의 자문위원단의 혹평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이 무대는 속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때로는 감정의 폭우에 흠뻑 젖어도 좋다. 넘쳐 흐를 것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로는 쏟아부어 줘야지~
장혜진과 김조한의 무대에서 셀린 디옹과 피보 브라이슨을 느낀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듀엣 미션에 가장 충실한 팀이었다. 이들이 인순이팀보다 순위가 낮을 이유는 없었다.
나가수의 대세로 떠오른 댄싱 귀요미 '바비킴'과 '부가킹즈'는 또 한 곡의 노래를 온전히 자기들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출연 초기에는 바비킴과는 어울리지 않는 (보컬 학원 출신 소몰이떼 가수들에게나 어울릴법한) 박선주의 편곡이 많이 거슬렸는데, 이젠 정말 바비킴이 감을 잡은 것 같아서 흐뭇하다. (가수가 편곡자 덕을 봐야지, 편곡자가 가수 덕을 보려고 하면 안되지~)
다음엔 관객 선동 없는 진득한 무대에서도 바비킴만의 매력과 감동을 흠뻑 느끼게 해 줄 선곡도 기대해본다.
다음은 김경호, 김연우의 무대. 김연우의 정갈하고 정확한 보컬과 김경호의 풍부하고 힘있는 샤우팅이 이런 식의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서로가 고음 경쟁만 했다면 아마 귀 따가운 불협화음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오히려 김연우의 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고음역에 있고, 풍부하고 화려한 김경호의 목소리는 중음역대로 조금 내려와 준 것이 멋진 조합의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카라 주위를 키 큰 안개꽃이 둘러싸버렸더라면 이상한 꽃다발이 되고 말았을텐데...
거침없으면서도 정확했고, 날카로우면서도 풍부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90년대의 감성이 이들을 통해 극대화되어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새 가수 조규찬과 박기영의 무대는, 마치 초고층 빌딩 숲 속 한 귀퉁이에다 유학파 출신 바리스타가 차린 아담하면서도 정갈한 분위기의 핸드드립 커피전문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아는 사람은 커피맛을 알고 찾아오겠지만, 솔직히 이 가게의 매출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규찬이란 가수 자체가 나가수에 출연하기에는 아무래도 약해보였고, 출연한 모습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음원으로는 오래오래 듣기에 더없이 좋은 트랙이다. 그러나 이 독한 서바이벌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심쩍은 게 사실. 그래도 그의 다음 무대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
지난 듀엣 미션은 지금까지의 경연 중에서 가장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경연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두고두고 오래오래 들을만한 음원 트랙도 여럿 건진 것 같아서 흐뭇하다.
재수 시절, 사흘이 멀다하고 학원 근처 노래방을 전전하던 3인조 친구들이 생각난다. 김경호와 김연우가 부른 '사랑과 우정 사이'를 우리도 함께 나눠 부르곤 했었는데... 다시 모여 노래방 한번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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