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독설이 쏠깃한 이유
나는 신해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변성기를 좀 잘못 보낸 듯 약간 막힌 듯한 보이스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는 표정으로 내뱉는 그의 독설들도 싫었다. 어쨌든 별로 유쾌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그의 음악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원래도 그리 곱게 뵈지 않던 그가, 이번엔 대다수의 음악 소비자들을 향하여 정면으로 독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신해철은 지난 2일 오후 서울 홍대 인근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에서 4년만에 내놓는 넥스트 6집 '666' 씨리즈 중 첫번째 파트를 공개하는 쇼케이스 자리에서 짜증섞인 독한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그 시작은 자신들의 새 앨범에 대한 설명과 함께였다. 자신들의 넥스트 6집은 헤비록, 아트록, 랩, 클래식, 프로그래스 등 여러가지 장르가 혼재되어있는 앨범이며, 클럽에서 들으면서 몽롱하게 취하는 음악들과는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음반으로 요즘 시류와 정반대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클럽에서 들으며 몽롱하게 취하는 음악이 요즘 시류라는 얘기다. 약간은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또 조금은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어 일단 패스~
역시나 잘난 척이라 눈꼴이 틀리고, 자신들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 음악들을 벨소리 다운로드용으로 싸잡아서 평가절하 시키는건 눈뜨고 못봐줄 일이다.
화가 잔뜩 치밀어 오르지만, 조금만 참고 그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한다. 그의 비난이 음악계 전체를 싸잡아 비난한 말은 아니고, 시류에 편승해 안일하게 작업을 하는 일부 음악인들을 두고 한 말일 것이라고... 마음을 좀 누그러뜨려보자.
그의 다음 독설은 하이테크놀로지를 향해있다. 그는 이 음반에 테크놀로지를 자제하고 멤버 개개인의 개성을 담는데 주력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와 함께 "요즘은 기계가 음악을 하고 사람은 음악을 들고 장사를 하는 꼬라지가 펼쳐지고 있다"고 한국의 음반 제작 풍토를 비난했다. 여전히 싸가지 없는 그의 말... 조금만 더 참아보자.
그렇게 참았던 분노는 그의 다음 말에서 극에 달한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음악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들에게까지 독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불법 다운로드는 비단 음반 제작자의 수익 저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불법 다운로드를 받으면서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라도 갖고 있으면 다행일텐데 지금 소비자들은 그런 마음조차 없다. 마인드가 피폐해지고 천박해졌다"고 비난했다.
'피폐', '천박'... 이제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에게까지 대놓고 모욕적인 말을 서슴치 않는다.
"불법 다운로드를 받으면서 음반을 잘 못 만들어서 안 산다고 하는 것은 강도가 집을 털어 가면서 '똑바로 살라'고 집주인을 훈계하는 것과 똑같은 꼴이다"
"소비자들이 음악에 대한 능동성이나 이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화가 나긴 나는데... 뭐라 반박하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대학가요제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지금껏 줄곧 비호감이었던 '신해철'의 그 싸가지 없는 막말에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도, 그의 독설을 받아칠 말들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학창 시절, 어쩌다 시내 나들이를 갔다가 집으로 돌아 올때면, 꼭 손에 들려져있던 것은 정사각형의 비닐에 담긴 LP판이었다. 용돈이 조금 모이거나, 세뱃돈이라도 받으면 가장 우선적으로 사게 되는 것도 역시 '판'이었고...
친구 아무개집에 새 전축이 들어왔다고 하면, 내가 소장하고 있는 판들을 가져가 들어보면서 친구를 막 부러워했던 기억, 불꺼진 방에서 양쪽 스피커와 이등변 삼각형으로 연결되는 꼭지점에 머리를 대고 누운 상태로 조지 마이클과 엘튼 존이 라이브로 부르는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나, 폴라압둘의 [Rush Rush]에 깊이 빠져있던 기억.
당시 MBC 라디오의 '팝스 투나잇'을 진행했던 '이수만' 아저씨가 최고의 음질을 위해 DAT(Digital Audio Tape)를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CD 음질과 DAT 음질은 어떻게 다른가 스피커 중간에 쪼그려 앉아 몰입하며 들었던 생각도 난다.
그땐 정말 능동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고, 더 좋은 음질로 음악을 즐기고 싶어하는 순수한 열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나도 언제부턴가 길보드에서 최신곡을 가득 담아놓은 테이프를 사기 시작했고, 듣는 음악보다는 나의 노래방 레퍼토리로 만들만한 곡들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또 MP3가 나오면서부터는 불법 다운로드에 익숙해졌다. 최근 들어 DRM이 강화되지 않았었다면, 나는 여전히 불법 다운로드를 통해 음악을 들었을 것이다. 2005년 4월 이선희 13집 [사춘기] 앨범 이후에는 CD를 사본 적도 없다.
나 역시 신해철의 독설의 대상이 되는 '피폐'하고 '천박'한 음악 소비자였던 것이다.
이미 편하고 저렴하게 음악을 듣는 방법에 익숙해진 음악 소비자들에게, 그의 독설이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미칠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자에겐 약간의 영향력을 미쳤다.
4000원이면 40곡을 다운받을 수 있는 정액제 요금을 다달이 결제하면서 내가 마치 한국의 대중음악발전에 크게 기여를 하는 듯 으쓱했던 나였다. 나 스스로도 그만큼 음악에 대해 인색해져버린 것이다.
오늘 당장 구석에 쳐박아 두었던 미니 컴포넌트를 꺼내 뽀얗게 앉은 먼지를 닦아내야겠다. 그리고, 쉬는 날인 내일은 레코드샵에 가서 괜찮은 CD 몇장 골라와야겠다. 예전엔 당골 약속장소였던 '타워 레코드'는 이제 없지만, 그 몇 안남은 레코드매장에도 자주 발걸음을 해야겠다.
그 싸가지 없는 '신해철'이 내마음을 흔들었다. 기분은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