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정의 빨간구두

배수정의 영국인 발언 논란에 대한 생각

피터블랙 2012. 7. 28. 12:49

 새벽 4시 15분에 알람이 울렸다.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2시간 이상 빠른 시각이었다.

 

 주5일 근무와 거리가 먼 내게 오늘은 출근을 해야하는 똑같은 토요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평소보다 2시간 먼저 일어난 이유는 바로 '런던 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때문이었다.

 사실은 '올림픽 개막식'때문이 아니라 '배수정'때문이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하겠다. 내가 비록 세계적으로, 또는 시대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큰 행사나 경기들은 가급적 생방송으로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하는 올림픽 개막식을, 그것도 출근 전에 평소보다 더 빨리 일어나서 볼 정도의 사람은 아니기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배수정'이 현장 중계하는 '올림픽 개막식 방송'을 보기위해서 그 시간에 일어난 것이었다.

 '위대한탄생2'의 방송이 끝난 후, 팬카페( http://sujungpae.com )에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며 기다려 달라는 인삿말을 남겨두고 영국으로 떠난 후, 줄곧 소식이 없었던 그녀였기에,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 배수정이 '개막식 공동 MC'를 맡을 예정이며, 현장 리포터로도 활약을 펼친다는 소식은 그녀를 기다리는 팬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영국인인 배수정이 직접 전하는 현장 소식에는 국내에서 파견된 특파원이 대신할 수 없는 생동감과 깊이가 있을 것 같았고, 자칫 밋밋하고 지루하게 흐를 수 있는 개막식 중계에서도 배수정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으로 매력과 재미를 더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방송 진행 경험이 전무하고, 한국말이 영어만큼 익숙하지 않은 그녀에게 긴 시간의 생방송 중계가 큰 부담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스런 마음은 있었다. 영국 이민 2세대 치고는 한국말을 잘 하는 편이고, 태도나 말투도 그냥 한국사람 같아서, 그녀가 영국에서 나고자란 교포라는 사실을 자주 잊게 되지만, 배수정은 한국말과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영국인이 맞기 때문이다.  

 

 아직 덜 떠진 눈으로 거실 소파에 나와 앉았다. MBC로 채널을 맞추니 중계방송에 앞서 김조한과 박정현이 부른 MBC 올림픽 테마송 '지금 이 순간'의 뮤직 비디오가 나오고 있었다.

 현장 스튜디오 진행을 맡은 '김민아' 아나운서의 올림픽 소개가 있었고,

 곧이어, 개막식 중계 공동 MC를 맡은 '배수정'을 소개하는 플러프가 흘러나왔다. 올림픽 기간 동안 방영될 예정인 '런던 100배 즐기기'를 위해 촬영한 화면 중 일부인 듯 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의 테마 칼러인 '핫 핑크' 의상을 입은 배수정의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앞으로 방영될 '런던 100배 즐기기'에서는 런던 곳곳을 돌며 맛집도 소개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소개해줄 모양이다.

 오리지널 '런더너' 배수정이 전하는 생생한 런던 소개 덕분에, 이번 런던 올림픽이 한층 더 즐거워질 것 같다.

 드디어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 연결되었고, 개막식 공동 MC를 맡은 '김성주-배수정' 콤비가 소개되었다. 이미 어두워진 후에 촬영된 저 화면은 26일에 촬영되어 이미 언론에도 스틸컷이 공개된 바 있는 화면인 듯 했다. 두 사람은 이미 스타디움 안에 있는 중계석에 자리를 하고있는 상태였고, 이 화면 이후로는 줄곧 목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영국의 근대사가 한편의 뮤지컬처럼 펼쳐진 식전행사는 단순한 화려함과 웅장함을 뛰어넘어 뚜렷한 스토리와 감동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 소아과 의사로서는 역시 영국 유명 아동병원인 '그레이트 오먼드 스트리트 병원(GOSH)'과 국립의료원(NHS)을 테마로 펼쳐진 공연을 가장 인상깊게 본 듯 하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연주에 익살스런 재미를 더해준 미스터 빈 '로완 앳킨슨'의 출연, 그리고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의 에스코트를 받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헬기에서 스카이 다이빙으로 뛰어내리는 장면 등에선 진지하고 엄숙한 가운데에서도 여유를 잃지않는 영국식 유머를 느낄 수 있었다.

 식전 행사의 열기는 영국 락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젊음의 스테이지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런더너 '배수정'의 진가도 바로 이 부분에서 한껏 발휘되었다. 본토 발음으로 하는 음악소개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코멘트로 중계방송에 생생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창 선수입장이 이루어지고 있을 무렵, 나는 출근 준비를 해야했고, 서둘러 준비를 해서 출근을 했다. 한참 진료를 보다가 개막식 중계방송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서 포탈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배수정'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와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배수정'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사실은 기뻐할만한 일이었지만, 갑자기 화제로 떠오른 이유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가 중계방송 도중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고 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었다.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는 말만 들었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아직, 그녀가 영국에서 태어나서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파장은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영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부모님이 모두 한국사람인 그녀가 스스로를 '영국인'이라고 표현한 사실에 대해서는 많은 한국인들이 반감을 가질만 했다.

  

 후속 기사에서 배수정은 '영국인은 영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고, 내 뿌리는 한국인'이라는 해명과 함께, 다음 방송에서 공식 해명과 사과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아직 방송 아마추어인데다가 한국어가 서투른 배수정이 흥분한 나머지 의사전달이 제대로 되지않아서 본인 역시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MBC관계자의 말도 덧붙였다.

 

 사실, 배수정은 영국인이 맞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도 영국에서 살고있는 영국인이다.

 영국에 잠깐 살다 오거나, 유학만 갔다온 사람이라도 내가 잠깐 살았거나 공부한 곳에서 세계적으로 큰 행사가 펼쳐지면 뿌듯하거나 자랑스러운 느낌이 들 수 있다. 어린 시절 3년을 일본에서 살다온 나와 우리 가족도 1985년 우리가 살던 고베 유니버시아드 개막식을 TV로 지켜보면서 뿌듯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하물며 영국에서 나고 자라고 현재도 살고있는 사람으로서, 런던에서 펼쳐지는 올림픽을 지켜보고, 또 고국에 방영되는 중계방송의 MC로 참여한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우리는 단일민족국가지만, 영국은 미국처럼 수많은 민족이 모여살고있는 나라이다. 우리에게 우리나라는 곧 한민족을 의미하지만, 그들에게는 별개의 의미일 것이다. 배수정은 한민족이지만 그녀의 국적은 영국이며 그녀가 살고있고 속한 국가도 영국이 맞다. 그래서 그녀가 말한 '영국인'의 의미는 '한민족과 대등한 의미의 한국인'에 상응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녀의 후속설명처럼 '영국에 살고있고 속한 사람'이란 뜻이 맞을 것이다.

 

 어쨌든 배수정의 '영국인' 발언은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만 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도 느낀 것이 많을 것이다. 팬으로서는 너무 큰 상처를 받거나 실의에 빠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수정은 '한민족'이지만 영국에서 태어나서, 영국식 교육을 받고, 영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영국인'이기도 하다. 7개월이 넘는 위대한 탄생2의 대장정을 함께 한 배수정이지만, 그래도 아직 그녀에게 고국은 낯설 것이다.

 아직 한국말과 대한민국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동포 '배수정'에게 조금만 따뜻한 시선을 보내줄 순 없을까? 말 한번 잘못 했다고, 그렇게 혹독한 비난을 해대고 싸늘하게 등을 돌려버린다면 그녀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로 비춰질까? 

 

 배수정에게 대한민국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라이지만, 아직은 낯설고 먼 나라이다. 한국사람들이 보고듣는 한국방송이기 때문에 그녀가 방송에서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진정으로 '한국인'임이 자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녀가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이해하고 사랑할수 있도록 조금 더 따뜻한 한민족의 정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에게 왜 그렇게 까칠한거죠, 우리?'